a romance

[게임]For. 소루님

no_R 2012. 7. 31. 11:36

 For. 소루님

 

W. 량

어느 겨울, 정신없이 진행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줄 핵심인물인 드래곤 마스터 프리드의 갑작스럽게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그녀를 제외한 영웅 전원에게서 걱정을 사던 무렵이었다. 그냥 감기나 혹은 쉽게 풀리지 않은 봉인마법으로 인한 스트레스성으로 인한 것이겠거니 했던 생각과는 달리 날이 갈수록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다. 게다가 요 달에 들어 무슨 이유인지 식사마저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가뜩이나 체력도 부족한데 여기서 더 없으면 안 된다며 끼니만큼은 죽어도 챙겼던 그녀인지라, 제대로 먹질 못하니 야위어가는 건 순식간이다. 게다가 가벼운 몸살기운에 현기증까지 동반 돼서 자주 휘청거리는 일이 발생하자, 더 이상 그냥 넘어가선 안 되겠다고 판단. 같은 마법사이면서 유일하게 힐러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루미너스에게 진단을 받게 한 결과―.

이러저러 몸 상태에 대해서 물어보고 간단한 맥을 짚어본 뒤 이 상황을 모두 종합하여 가장 합당한 결론을 도출해 낸 루미너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저 복잡 미묘한 심정이다. 고민스러운 감정을 품은 채 제 앞에 앉은 리더와, 그 뒤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세 사람을 훑어봤다. 그러다 프리드와 가장 가깝게 서 있던 남자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진찰이 끝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쓸면서 정말로 괜찮은 거냐면서, 온 세상의 걱정이란 걱정을 짊어진 것처럼 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파트너인 용왕과 맞먹는 위치에 올라서 있는 남자였다.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 함께하기로 한 동료였으나, 루미너스로서는 처음부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쓸데없는 능글거림에 적당적당, 가볍기가 그지없는 성격은 자신과는 분명 상반됐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만 그러할 뿐, 실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싫었다. 남의 연애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왕 사귈 거면 좀 더 견실한 남자가 낫지 않겠느냐 하던 생각을 해오던 중이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축하해야 할 일은 분명 맞으나 영 기분이 개운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단짝으로 사이가 좋던 메르세데스와, 아란과도 얘기를 나누던 네 사람의 시선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꽂혀옴에 루미너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었으면 했지만 아무리 거듭 생각해봐도 나올 결론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그다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았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말해만 하는 상황이었다. 시큼 떨떠름한 기분을 안은 채 루미너스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임신입니다.”


선언과도 같은 루미너스의 말 직후. 잠시 침묵이 흐른다 싶던 집안 내부에는 이윽고 다수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둔탁한 소음과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루미너스 말로는 대략 5개월 정도 된 것 같다는데.”

“어때, 프리드. 딸일 것 같아, 아들일 것 같아?”

“음, 글쎄….”


두툼한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양 옆에 앉은 메르세데스와 아란과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던 프리드는 딸이냐 아들이냐는 질문에 고민을 하며 시선을 방구석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가뜩이나 바쁜 시기인데 잘 하는 짓이다, 인간아. 라는 루미너스의 눈빛으로 온몸으로 쬐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믿기지 않게도 예비 아빠가 된 팬텀이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에게서 비오는 날에 먼지 나도록 맞는다는 말이 떠오를 만큼, 일방적인 폭행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듯 온통 엉망이었지만, 피멍까지 든 얼굴만큼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눈살 찌푸릴 만큼 신나게 얻어맞았으면서도 그렇게 좋은 걸까. 하여간 바보라고 입안으로 중얼거리면서도 픽 웃었다.

임신이라는 루미너스의 말 직후 시작됐던 폭행은, 더 이상 했다간 태교에 좋지 못할 거란 판단이 내려질 만큼 오래 이어지다가 간신히 멈추긴 했지만 피해자인 팬텀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그나마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지, 그것마저 아니었으면 홀몸으로 애를 키우게 될까 하는 걱정도 얼핏 들 정도였다. 물론 혼자서 잘 키울 자신은 있었지만 이런 제 생각을 안다면 팔불출인 저 남자는 분명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팬텀이 우는 건 지금까지 딱 한번 봤다. 끈질기게 고백해오던 그의 고집에 져, 결국 프러포즈를 받아들였을 때였다. 겨우 몇 개월 사이에 보는 이들마저 안타깝다 할 만큼 정말 수도 없이 차였는데도 꿋꿋하기가 그지없었다. 나도 고집쟁이였지만, 팬텀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죽했으면 아프리엔마저도 마스터의 고집에 맞먹는 인간이 또 있을 줄은 몰랐다며 진심어린 감탄까지 했을까.

전쟁 시기기도 했고 오직 이기는 것에만 몰두하고 싶었기에 다른 데로는 마음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반신의 종족들인 오닉스 드래곤들과 리프레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인이라니. 현실파악을 못할뿐더러 자다 일어나서 지껄이는 헛소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팬텀에겐 본인은 친구라고 꿋꿋이 주장하나, 이 전쟁에 참전하게끔 만들 정도로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친 아리아 여제가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로 절친한 친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나쁜 쪽으로만 생각이 기울었다. 그녀를 잃어버린 슬픔이 너무도 커, 그것을 잊고자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아닐까 하고.

누군가의 대신이 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런 건 정말로 사절이다. 서로만 상처받을 뿐이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돼서 전력으로 마음을 쏟아 붓는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만큼 절망스럽고 비참한 게 또 있을까. 만에 하나 그의 마음이 진짜라 하더라도 정말로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였기 때문에 받아들일 마음 또한 없었다.

이러한 이유 하에, 매번 그가 말해올 때마다 매몰차게 거절해왔지만 결국엔 항복해버렸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전해오는 마음이 진짜였기 때문에. 그 다정한 울림을 무엇보다도 좋아하게 된 자신을 발견해버려서. 열심히 도망쳤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엔 붙잡혀 버렸다. 그리고 그때서야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분명 그때였다. 사실은 누구보다도 필사적인 주제에 능글능글 웃으면서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던 그가 웃는 얼굴로 펑펑 울었던 건. 다시 떠올려보자면 참 쑥스러웠지만, 지금까지도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릴 만큼 기뻤다. 그게 벌써 반년 전이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까지 돼버렸다.

영 고민스럽기가 그지없는데 여전히 웃고 있는 팬텀의 얼굴을 보자니 고민이 싹 사라진다. 저 바보한테서 바보 균이라도 옮아버린 건가. 붙어있는 시기가 길었으니 어쩌면 그럴지도. 한탄을 해보지만 결국 덩달아 웃어버리고 말았다. 프리드가 웃자 양 옆에 앉아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던 메르세데스와 아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콕콕 찔러왔다.


“대답도 안하고 왜 그리 웃어~”

“식도 올리지 않고 전쟁 중에 속도위반 해버린 건데도 여유롭네.”

“나도 그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런데 식은 무슨, 그냥 정화수 떠다놓고 부부가 됐습니다, 하고 선언하면 되는 걸.”


그 말에 웃고 있던 두 친구들은 물론이고 저 쪽에서 얘기를 듣던 두 남자까지 덩달아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렇게 말이 충격적이었나? 얼어붙어버린 듯 꼼짝도 안하던 팬텀이 점점 울먹이는 눈으로 봐옴에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데, 저 말을 꺼내왔던 아란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프리드,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까진 안 해.”

“농담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들 마. 그리고 아까 전의 질문이라면, 글쎄. 난 되도록 딸이었으면 좋겠는데.”

“딸이라. 좋다~ 근데 아들이어도 부모들이 둘 다 한 외모 하니까 예쁠 것 같은데.”

“어째 당사자들보다 더 기대하는 것 같다, 메르?”

“그런가?”

“응.”


그녀들 말처럼 자신은 그렇다 쳐도, 솔직히 팬텀은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정말로 잘생겼으니 아빠를 닮았더라면 딸이던 아들이던 분명 예쁘겠지. 누구를 어떻게 닮든 상관은 없지만, 저 밑도 끝도 없는 허세만큼은 안 닮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할까. 인중에 땀 찰만큼 창피할 때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아….”

“왜 그래, 프리드?”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팬텀, 글쎄 농담이라니까? 그러니까 그런 얼굴 좀 하지 마.”

“하지만 프리드으~”

“나 원 참.”


루미너스에게 치료를 다 받은 팬텀이 곁으로 다가오자 아란이 메르세데스의 옆으로 가며 자리를 비켜준다. 루미너스 또한 의자를 가지고 와 가까이에 앉았다. 친구들을 보며 웃다가 힘 빠진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오는 팬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에 농담처럼 했던 말이 팬텀 본인에겐 큰 충격이었는지 시무룩한 표정이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꼭 비 맞은 강아지 저리가라 수준이다.

도대체 이 바보를 어쩌면 좋을까. 난감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팬텀이 귀엽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이 잘생긴 얼굴이 웃을까 고민을 하다가 들고 있던 잔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 팬텀의 양 뺨 위로 두 손을 살짝 올렸다. 그러자 당연하단 듯이, 이젠 너무나 좋아하게 된 깨끗한 자안이 그 안에 저를 담아온다. 그게 무척 기분 좋아서 살풋이 웃었다.


“내가 이런다고 정말 식을 그렇게 때울 생각도 없잖아.”

“당연하지. 적어도 웨딩드레스만큼은…!!”

“그건 됐고. 어쨌든 그럴 거면서 뭐 그리 축 쳐진 얼굴이야.”

“그래도 말이지….”


조금 전보다 표정이 풀리긴 했지만 우울해하는 건 여전하다. 남자피부라곤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피부를 손끝으로 가만가만 쓸다가, 뭐든 농담이었으니까 표정 풀란 말을 하며 그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평소에도 잘 해주지 않는 애정표현이었기에 팬텀의 얼굴이 확 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물론 주변에서 어우, 닭살! 이라며 아란과 메르세데스는 물론이고, 하물며 루미너스까지도 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뭐 어떤가.

제 이름을 외치며 저를 꼭 끌어안아오는 팬텀으로 인해 하마터면 의자가 넘어질 정도로 크게 휘청했지만 프리드 역시 까르르 웃으며 팔을 벌려 그를 안았다. 서로에게 기대지는 무게와 온기가 기분 좋았다. 허세를 제외하고는 뭐든 상관없었지만 꼭 그를 닮았으면 하는 게 있자면 바보 같은 점이라고 할까. 이 남자처럼 다정한 아이었으면…. 팬텀과 같은 자색 눈동자라면 더더욱 좋지 않을까?


(중략)


“그런데 팬텀.”

“응?”


임산부는 얌전히 일찍 자라며 책이며 두루마리까지 몽땅 뺏겨버린 뒤, 억지로 침대에 눕혀졌을 때였다.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았지만, 현재 전쟁 중이었기에 그건 크나 큰 욕심이었다. 동맹을 맺은 연합군들과 관련된 일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모조리 넘겨버린다 하더라도, 봉인마법 만큼은 프리드와 아프리엔의 지식을 끌어 모아 만드는 합작이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해 만든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낮 동안 봉인마법을 만드는 데에 매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정이 넘어서 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며 결사반대를 한 팬텀 덕분에 이 시간이 되면 늘 강제로 그에게 안겨져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푹신한 침대인데도 불구하고, 잘못 다루면 깨져버리는 유리세공을 다루는 장인처럼 조심스럽게 저를 내려놓은 뒤 몸을 일으키려는 팬텀의 소매를 꾹 잡았다. 이런 제 행동에, 왜? 하고 대답하며 침대에 걸터앉는 그에게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나 포도가 먹고 싶어.”


뜬금없는 소리였다. 지금 계절은 한겨울이다. 물론 지역마다의 계절이 다르기 때문에 뒤진다면 나오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한밤중이기까지. 정말 뜬금없단 걸 알았지만, 늘 그렇듯 이제 잘 시간이라며 결코 가볍지 않을 저를 가뿐히 안아든 팬텀의 얼굴을 본 순간 포도가 먹고 싶어졌다. 원인은 아마 자수정만큼이나 선명한 자색 눈동자 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즘 들어 이렇게 뜬금없이 무언가가 무작정 먹고 싶을 때가 곧잘 일어나서, 늘 고생하는 팬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때에는 가능한 주문들이 대다수여서 서로에게 그다지 힘들이진 않았는데, 이번은 좀 유별나다. 이런 제 생각만큼이나 팬텀 역시 황당한 모양인지 크게 뜬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어렵게 입을 열어온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자신이 해줄 말은 딱 한마디였다.


“…하지만 프리드, 지금 겨울―”

“그건 아는데, 포도.”

“……저기, 프리드?”

“포도.”

“지금 당장?”

“응. 포도.”


변함도 흔들림도 없이 올곧게 한 가지만을 꿋꿋이 요구하는 프리드의 말에 팬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가 느끼는 난감함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지금 자신으로선 포도가 너무 먹고 싶었기에 철회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마지노선까지 몰려져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꺼내오는 그의 기대마저도, 한 단어로 와장창 깨트려버렸다.


“한밤중인데….”

“포도.”

“…네, 다녀오겠습니다.”


어디서 구한다냐. 한탄하면서도 결코 한숨만큼은 내쉬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는 팬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금 뒤 아래층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즈음에서야 침대에 모로 누운 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배를 쓸었다. 날이 갈수록 조금씩 불러오던 배는 아주 약간 둥그스름한 테를 그리고 있었다. 그게 무척 신기하고, 기뻐서. 입 꼬리를 양쪽으로 살짝 끌어올리며 뱃속의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아빠 참 바보 같지?”


하지만 그 점이 귀엽고 좋기 때문에 네 아빠를 사랑한단다, 아가야.

그러니까 겨울에 한밤중에 네 아빠한테 포도 가져다 달라고 했으니까, 이번만큼은 거부하지 말고 꼭 먹어줘야 해?

 

 

 

새벽에 쓴 무언가의 허물..

떡밥을 물었는데 이렇게밖에 내놓질 못하는 저의 잉여스러움에

그저 통탄할 뿐이옵니다orz

 

메이플 스토리의 영웅즈

팬텀x(여)프리드

 

소루님 찰진 썰 잘 물었습니다 냠냠'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