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탑]청소
현대 AU. 청소
W. 노량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휴대폰의 진동소리가 유독 다급하게 들리는 건 착각일까. 제가 맡은 (담당구역: 집안청소)의 일을 모두 끝내놓고 소파에 앉아 쿤의 방에서 꺼내온 책을 읽던 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닦여나간 원목의 테이블에 뿌듯하게 웃다가도, 테이블러너 위에서 위이잉- 울고 있는 제 휴대폰에 시선이 닿음에 물음표를 띄웠다. 누군가 싶어 가만 들여다보니, 발신자는 쿤 아게로 아그니스(담당구역: 2층 청소), 제 동거인들 중 한명이었다. 지금 즈음이면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청소하고 있을 사람이 웬 전화란 말인가. 전화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말똥말똥 바라보고만 있자 휴대폰이 조용해진다. 아, 끊겼다. 하고 맹하니 중얼거리는데 지치지도 않은지 재차 울리는 소리에 도대체 뭐야…? 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응시했다.
금쪽같은 휴일 날, 집안을 거의 뒤집는 청소를 하게 된 경위는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동거하고 있는 세 사람들은 엄연히 직장인들이라, 집안일에 소홀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한다지만 한계가 있긴 마련이다. 결국, 셋 중 제일 많이 한다 해도 좋을 만큼 집안 살림을 거의 도맡아서 하던 스물다섯 번 째 밤은 지난 금요일 저녁, 정시퇴근으로 모처럼 집에 들어와 있던 두 동거인을 방에서 거실로 끌어내 앉히곤 이리 요구했다.
‘내일 다 같이 청소해요.’
거절은 거절한다. 안한다고 뺐다간 당분간 저녁은 밖에서 알아서 사먹고 들어올 줄 알라는 기세인 밤의 말에 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또 다른 동거인인 라크는 휴일에도 오전출근을 해야 했던지라, 그럼 점심에 먹을 장을 보고 식후 설거지를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청소는 쿤과 밤, 두 사람이 고스란히 도맡게 됐다. 부잣집 자제의 돈지랄이라고 표현하더라도 부족할 만큼 크고 화려한 오피스텔의 구조는 복층이었고, 쓰지 않는 2층은 자연스럽게도 다락방내지는 창고처럼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셋 다 1층만 돌아다니고 쓰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밤이 청소를 하자고 말을 꺼낸 이유엔 이 2층의 정리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셋이서 함께 살기 시작한지 벌써 몇 년 째. 늘 손닿는 1층에서만 지내서 몰랐지 며칠 전 찾을 물건이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아,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는 걸 깨닫게 된 밤이었다. 분명 정리 및 청소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워낙 아득한지라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외면하자니 그럴 수도 없었다. 차라리 가정부를 하나 두자는 의견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도련님이면서 타인이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집주인덕분에 무산되고 말았다. 주 생활공간인 1층 역시도 못지않게 넓고 이제껏 대충하다보니 손 갈 곳도 많았기 때문에 결국 쿤과 밤은 1,2층을 각자 맡아 청소하기로 결정하게 됐다.
그리고 오직 단판의 가위바위보 승부로 결정되는 최후의 결과에서 승리의 여신은 밤에게 미소를 지어주셨다.
청소도우미나 가정부를 부르는 것을 거부했던 건 쿤이었으니, 본인의 업보라 여기고 열심히 하라며 웃는 얼굴로 쿤을 2층으로 올려 보낸 밤이었다. …솔직히 걱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스물일곱씩이나 먹은 성인남자니 어련히 잘 하지 않겠냐는 방관 하에 무시해버린 밤이었다. 이제 거의 1시간이 되어가는 데도 물을 마시겠다더니 내려오지 않는 걸 봐선 꽤 성실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도합 세 번째 울리기 시작하는 울림에 대체 왜 이러나, 싶어 하며 그제야 휴대폰을 집어든 밤이었다. 액정 위로 뜬 통화를 옆으로 밀며 귓가로 가져가자 다급한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터져 나왔다.
“네, 무슨 일….”
「왜 이제야 받는 거야, 밤!」
“쿤 씨? 왜 그래요, 갑자기….”
「잠깐, 잠깐만 위에 올라와줘, 한번만 도와줘…!」
간절하기까지 한 목소리라서 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이제껏 이 남자를 알고 지내오면서 이렇게까지 다급하게 저를 찾는 건 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혼자서 못 옮길 만큼 무거운 물건이라든가 그런 건 없고, 뭐에 깔렸을 일도 없을 텐데. 그랬을 터면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2층의 상태가 어떤지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쿤에게 몽땅 밀어버렸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어차피 1층 청소는 일찍이 끝내기도 했고, 빨래는 조금 뒤에 돌리면 되고. 시간을 보니 라크 씨도 이제 곧 들어올 터였다. 어쨌든 점심 전에는 모두 끝냈으면 했기에 출근시간에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었지 않았던가. 어디까지 정리를 끝냈을까, 화장실은 2층에도 있으니 걸레만 들고 올라가면 되겠지 하며 2층 문을 열고 계단을 통통 가볍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층에 도착해 쿤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서던 차였다.
“쿤 씨…우왁?!”
“바아아암…!!!!”
절규에 가까울 만큼 제 이름을 부르짖으며 덮치듯 끌어안아오는 쿤으로 의해 깜짝 놀란 것도 있었지만, 관성의 법칙에 따라 몸이 뒤로 밀려나가는 건 당연한 꼴이었다. 으아아?!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휘청거리는데, 제 뒤로 계단이 있단 걸 깨닫고는 쿤을 붙잡으며 온 힘을 다해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넘어가다간 둘 다 나란히 계단을 구른다!! 겨우 꾸욱 붙잡고 버티기를 얼마나 애썼을까. 겨우 중심을 잡았을 때서야 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렇게 안도를 하다가 저를 와락 끌어안고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덩치 큰 개를 닮은 남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뭐에요, 쿤씨! 위험했잖아요!!”
“……나왔어.”
“지금 말 듣는…, 네? 뭐가요?”
“나왔다고, ‘그게’…!!”
그거? 고개를 푹 묻은 채 들지도 않고 외치는 쿤의 말에 도대체 뭐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대명사로만 말하면 대체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거’라는 말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무언가에 어쩌면, 하는 서늘함을 느끼고 말았다. 설마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설마는 믿음을 배신한다고. 더군다나 쿤의 지금 이 반응. 보통 땐 결코 볼 수 없는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모습이다. 이즈음 되면 촉이 오고도 남는다. 어, 설마, 진짜…? 하지만 1층 청소 할 때도 못 봤었는데, 하고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차, 제법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던 2층의 바닥을 사사삭 하고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집어삼킨 밤이었다.
“――――!!!”
“그거 말이야, 그거! 그 긴 동선형의 뭔가를, 교만하게 머리에 붙이고 살랑거리는…!!”
“쿠, 쿤씨, 잠깐만요! 잠깐!!!”
그 이름을 말하면 죽어요!! 아니 그전에 아니길 바랐는데 진짜였냐고요!!! 오싹하게 등골을 후려치고 지나가는 감각과 함께 조금 전 보다도 숨 막히도록 끌어안으며 매달리는 쿤으로 의해 다시금 뒤로 휘청거리고 만 밤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뒤로 구르거나, 질식사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현재 2층 거실을 개선장군마냥 움직이고 있는 그 무언가로 의해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무의식중에 도망치고 싶어 주춤거리며 물러나려는데 꼴사납게 파들거리며 밤을 끌어안고 있던 쿤이 버럭 외쳤다.
“밤…!! 지금 여기서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어!”
“너무하잖아요, 쿤 씨!! 왜, 왜 홈스테이가 나왔는데 저를!! 알아서 퇴치하시란 말이에요!”
“밤!!”
“저건 저도 무섭다고요!!”
스물일곱씩이나 된 남자가!! 라고 하기엔 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저것’ 앞에선 나이고 덩치고 불가항력이었다. 일단 좀 놓고 대책을 생각하자는 밤의 달램에 겨우 쿤이 팔을 풀고자 노력했지만, 정신없이 바닥을 뛰어다니다 못해 이내 공중으로 찬란한 비행을 시도하는 「이니셜 B」의 도약에 꺄아아악-!!!! 하고 꼼짝없이 비명을 지르고 만 쿤과 밤이었다.
……결국 이 소동은 장을 봐오고 들어온 라크가 와 줬을 때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신의탑으로 전력 60분 1차, 주제는 자유.
쿤+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