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mance

[잭히컵]아이와 뽀뽀와 반칙 to. 란데뷰님

no_R 2013. 2. 3. 02:14


[잭히컵+소피] 아이와 뽀뽀와 반칙

W. 량


식사 후의 풍경이었다. 어린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라면 흔히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해보며 씻기 편하게 그릇들을 정리하곤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에 금방 손끝의 감각이 둔해진다. 집주인 잭은 거실에 나가있고, 손님인 내가 대신 설거지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식사 때를 제외하고 계속 부엌에 있다간 언제 어떻게 재앙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름 귀찮았지만 밥도 얻어먹었고, 몇 년은 걱정 없이 쓸 접시들을 하루 만에 박살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 대신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왜 내가 우리 집도 아니고 남의 집 살림살이를 걱정해야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막상 이유를 찾아보니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잭 혼자라면 모를까 이 집엔 어린애가 둘이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잭의 사촌인 제이미와 소피로, 겨울방학이라 집에 놀러왔다고 한다. 뭐든 이런 이유 탓에 잭은 일찌감치 부엌에서 쫓겨나선 제이미와 왁왁 거리며 놀고 있는 중이다.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부엌까지 소리가 데굴데굴 굴러들어온다.


그리고 저런 오빠들과는 달리 소피는 제 옆에 딱 붙어선 지저귀는 새처럼 연신 재잘거리고 있다. 공부를 하러 왔다가 “어차피 방학이고, 내일 주말이니까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라는 잭의 말에 어차피 아버지도 집에 안계시니 “그러지, 뭐.”라고 대답한 뒤, 집에 혼자 있던 투슬리스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 쭉 들어온 수다였지만 도통 질리지가 않는다. 묵묵히 설거지만 하는 건 꽤 심심한 일인지라 옆에 쫄랑쫄랑 붙어있는 요 강아지가 마냥 반가울 수밖에 없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꽃만큼이나 방긋방긋 잘도 웃는 모습이 어지간히도 귀엽다.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키 높이가 맞지 않아 불편했는지 식탁의 의자를 낑낑거리며 근처로 끌고 오더니 그 위에 올라가 앉는다. 그런 아이가 마냥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두 손이 온통 물거품에 젖어 있어서 손을 뻗을 수 없다. 아쉽지만 웃는 얼굴로 하는 말마다 맞장구를 치는 걸로 대신했다.


이젠 이웃사촌인 버니가 그저께 자신과 놀아줬다는 내용으로 얘기가 넘어갔다. 정말로 재밌게 놀아준 모양인지 두 뺨을 발갛게 붉히며 꺅꺅거리더니, 나중에 크면 버니 오빠랑 결혼할거예요! 란다. 소피의 말에 히컵은 조금 난처하게 웃고 말았다. 사촌동생에 대한 애정이 끔찍한 잭이 알았다간 한바탕 난리가 날 소리다. 잭이 거실에서 제이미와 노느라 못 들어서 다행이지, 들었으면 어디 귀한 여동생한테 수작이냐며 이번에야말로 담판을 지으려들지도 모르겠다. 여동생 팔불출이 따로 없다. 나중에 딸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비웃다가 아주 조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왜인지는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놓아줄 마음도 없는 주제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픽 조소를 흘리다 그래서, 그래서- 라는 소피의 목소리에 상념을 접곤 아이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잔뜩 들떠서 신나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과연 버니가 어떻게 놀았기에 이렇게 애가 좋아하는 걸까 궁금해 하는데, 더 이어질 거란 예상과 달리 조용해져서 의아해졌다. 접시를 헹구던 물에 헹구던 손을 멈추곤 고개를 돌리니 물끄러미 제 손 쪽을 보고 있는 소피다.


“왜 그래?”

“오빠. 소매.”

“응? 아아.”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곤 나직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소피가 말했을 때야 팔꿈치까지 접어 올렸던 소매가 거의 내려왔단 걸 알 수 있었다. 아주 잠깐 딴 생각을 하던 사이에 소매가 풀려서 내려온 줄도 몰랐다. 소매통이 넓어도 괜찮겠거니 하고 대충 크게 접어 올려서 그런 모양이다. 이대로 있다간 물에 다 젖게 생겼다. 손 헹구고 접으면 되겠지 하는데, 물끄러미 본다 싶던 소피가 갑자기 홱 움직였다.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잭 오빠아아.” 하고 잭을 부르며 거실로 총총 뛰어나간다. 행동이 너무 날쌔서 소피를 잡는다거나 소매를 걷으려는 생각도 못하고 아이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깥의 소란이 멈추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소피가 개선장군처럼 환한 얼굴로 잭의 손을 붙잡고 들어온다. 제이미는 투슬리스와 노는 것 같고…. 저 재앙덩어리는 왜? 의아해졌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는지 잭 역시 어벙벙한 얼굴을 하면서도 순순히 사촌동생이 와달라는 대로 와준다. 나름 좋은 오빠인건가, 하는데 다른 한 손으로 저를 가리키는 소피다.


“오빠! 히컵 오빠 소매!”


그때서야 내 쪽을 본 잭이 왜 자기를 끌고 왔는지 이제야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소피가 제 손을 잡아끄는데 데 불편함 없도록 낮추고 있던 허리를 피더니 이내 이쪽으로 다가오는 잭이다.


“소매 내려갔어?”

“보시다시피 물에 젖기 일보직전.”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소피가 먼저 움직였지.”


기왕 온 김에 대신 접어주셔. 그리 말하며 두 팔을 들자 알았다며 빙긋 웃고는 손을 뻗어온다. 길고 곧은 손가락이 소매 끝을 차곡차곡 접어 올려준다. 오래도 봐온 손이지만 볼 때마다 예쁘단 생각이 든다. 남자 손 치곤 꽤 깨끗하고 하얀 편이니까. 그런 주제에 의외로 무식하게 악력이 세지. 그런 감상을 늘어놓는데 간간히 팔에 닿는 손끝이 꽤 차다. 식후인데도 이렇게 차다. 하여간 이놈의 수족냉증. 설거지 다 끝내면 따뜻한 차나 탈까 고민하며 이 집에 티백이란 게 있긴 했나 하는데 “자, 끝.” 이란 소리와 함께 잭이 손을 거둔다. 상태를 확인해보니 두 팔의 소매가 모두 깔끔하게 팔꿈치 위까지 차곡차곡 접혀 올라가 있다. 젖은 손으로 걷지 않게 된 점이 마음에 들어 고맙다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렸던 때였다.


겨울하늘 같은 새파란 눈동자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라? 당황해서 고개를 뒤로 뺄 생각도 못하던 사이, 손가락과는 달리 따뜻한 온기의 입술이 제 입술 위에 부드럽게 닿았다 떨어진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뭔 일이 벌어진 건가 싶었다. 두 눈만 멍하니 깜빡거리자 잭이 수고비라며 유려한 미소를 씩 짓는다. 꽤 근사한 미소라서 멍하니 보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잭의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꽁꽁 얼어붙은 머리를 굴리다, 오래가지 않아 깨닫고는 힘없이 픽 웃어버렸다. 미소를 입술에 머금은 채 잠깐 고개를 한쪽으로 툭 기울었다가, 아직도 빙글빙글 웃고 있는 잭에게 돌아서며 다리를 움직였다.


“아, 그러세요?”

“응. 그런 ㄱ…악!?”


태연하게 답하는 꼴에 거침없이 뒤로 가볍게 들었던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발끝의 강한 충격과 함께 웃고 있던 잭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곤 비명과 함께 푹 주저앉더니 황급히 왼쪽 정강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는 호들갑을 떤다. 고작 그거가지고 엄살은. 하긴 장사도 채이면 운다는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였으니 당연하긴 하다만…. 잭의 정수리를 뚫어져라 보며 좀 너무했나 싶었지만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이게 틈만 나면 성추행이야.”

“…히컵! 큽, 너무해!!”


알게 뭐냐. 애가 있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키스해오는 너란 녀석은 좀 맞아야 하거든요? 뚱하니 입술을 삐죽거리곤 다시 접시를 물에 헹구는데, 정강이를 쓸며 웅크린 잭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피가 멀쩡하게 서 있는 저를 올려다보며 꺅꺅 거린다.


“오빠, 나도 뽀뽀!”


까마득한 키 차이 덕분인지 소피에겐 뽀뽀하는 걸로 보였나보다. 그래서 왜 맞는지 모르겠단 듯 갸웃거렸던 거구나. 미묘하긴 해도 그나마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소피야. 네 사촌오빠가 내 발에 채여서 저래 주저앉았는데도 뽀뽀해달라는 말이 나오는 거니…. 안 닮은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닮은 사촌지간이다. 신기해하면서도 여전히 뽀뽀해달라는 소피의 조름에 잠시만, 하고 부탁하곤 마지막 남은 접시를 물에 후다닥 헹궜다. 손에 남아있던 세제도 물로 깨끗하게 씻은 뒤 물기를 두르고 있던 연녹색 앞치마에 삭삭 닦았다. 손자국 모양대로 물이 젖어 들어 색이 진해진다. 앞치마를 풀고 의자에 걸친 뒤에도 옷에다 손을 문질러 완전히 물기를 닦은 뒤, 내려다보니 소피는 여전히 두 팔을 제게 뻗으며 방긋방긋 웃고 있다. 아이고, 귀여워라.


이제 아픔은 좀 가셨는지 어정쩡하게 일어나선 뚱하니 노려보는 잭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한 채, 두 손을 뻗어 소피를 품에 안아들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말랑말랑한 뺨에 사랑스러움을 담뿍 담아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애정 넘치는 뽀뽀가 마음에 들었는지 까르륵 웃더니 나도, 나도!! 라며 목을 끌어안고는 제 뺨에 뽀뽀를 해준다. 예뻐라, 사랑스러워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이런 팔불출은 둘도 없다며 잭을 깠지만 이런 여동생이라면 팔불출이 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나가서 제이미 오빠랑 셋이서 놀자고 말하며 여전히 소피를 안은 채 나가려다가, 몇 걸음 가다 말고 멈춰선 잭을 향해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드러나는 표정이어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손을 뻗었다.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잭?”


손이 내밀어지자 온통 삐진 얼굴에 불만스러움이 덧씌워진다. 계속 그렇게 버틸 것만 같은 기세로 있으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을 잡는다. 여전히 차가운 손에, 나 역시도 물을 만진 터라 못지않게 차가웠지만 이렇게 계속 잡고 있으니 금방 미지근한 체온이 오른다. 꽤 기분이 좋아져서 입술만 휘어 웃으면서 손잡은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말끄러미 올려다보니 잘생긴 얼굴을 한 주제에 어린애처럼 툴툴 거리며 불만을 토로한다.


“순 병 주고 약 주고.”

“어이구, 그래서 삐지셨어요? 솔직히 맞을만한 짓 했잖아.”

“내가 뭘?”


난 잘못한 거 없소. 라고 반성은커녕 시위하는 말투다. 이게 그냥. 씁, 소리를 내다가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진짜 애보다도 더 애 같다니까. 손을 잡기 전도 그렇고 지금만 하더라도 좀처럼 펴지지 않는 얼굴은 애정을 종용하듯 원하고 있다. 무슨 애정결핍도 아니고. 어쩌면 욕구불만일지도 모르겠다. 한심하다 생각하면서도 이 남자가 이상하게도 귀여워 보인다. 이것이 바로 콩깍지인가 싶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그렇게 아끼는 사촌동생을 부럽단 눈빛으로 보는 잭이 하도 우스워서. 마주잡고 있던 손을 제 쪽으로 잡아당기며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 그리곤 조금 전 소피에게 해줬던 것처럼 잭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솔직하게는 살짝 벌어진 저 입술에 잭이 제게 해줬던 것처럼 키스해주고 싶었지만, 소피가 있으니 꾹 참을 수밖에 없다.


아쉬움을 몰래 삼키며 떨어지자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 잭의 얼굴이 보여 왔다. 그런 잭의 얼굴이 웃긴지 소피가 오빠 이상한 얼굴! 이라며 까르륵 웃는다. 덩달아 킬킬 웃으며 이만 나가자며 잭의 손을 잡아끌었다. 넋 놓고 끌려온다 싶더니 이내 반칙이야, 히컵. 이라며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귀까지 새빨개져선 고개를 푹 숙이는 잭이다. 그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곤 모른 척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글쎄, 잘 모르겠는걸. 애초에 반칙은 누가 먼저 했을까나? 후폭풍이 조금 걱정되긴 해도 꽤 재밌는 주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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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놀다가 란데뷰님께서 보고싶다고 하셔서 끄적끄적 풀었던 썰을 이케이케 다듬어본달찌 쑻...

소피 귀여워요 시름시름....소피같은 여동생이라면 하나 더 생겨도 나쁘진 않을것 같아*^ㅅ^*

이렇게 덕질하는 건 오래만인것 같아서 되게 기분 좋음.

울 란뎁님 스릉흔들> <vVv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