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mance

[잭히컵]투닥투닥 to.천원님

no_R 2013. 1. 13. 03:37

 

 

 

히컵. 히컵. 몇 번이고 불러봤지만 품에 안겨진 소년은 제 손목 두께보다도 훨씬 더 두꺼운 하드커버의 책을 모아세운 무릎위에 올려두곤 안의 내용에서 시선을 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라니. 히컵의 어깨너머에서 지루한 책 내용을 들여다보다 재미가 없어 시선을 거두곤 가냘픈 어깨에 턱을 툭 올려 기댔다. 또 그 상태로 가만히 있기를 몇 분. 시선만 들어 옆얼굴을 바라봤다. …많이 화났어?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무슨 벽을 보고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는데 왜 대화가 오가지 않는 거죠. 내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효. 따위의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사실상 원인제공은 자신이 한 터라 이럴 자격 없긴 하지만. 이렇게 붙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용하지만.


팔 안의 온기를 가만히 느끼다 눈을 굴려 벽의 시계를 봤다. 시계바늘은 5시 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고 그만큼 해는 짧아서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빛은 퍽이나 예쁜 오렌지 빛이다. 평소라면 그러려니 넘어갔을 수도, 또는 예쁘네- 하는 감상 따위를 품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있어선 이렇게나 빨리 지나간 시간이 야속하기나 했다. 후회가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왜 잊고 있어버렸던 걸까. 굉장히 한심하고 또 미안해서 한숨이 절로 나오려고 했지만, 간신히 볼 안에 빵빵하게 담았다가 도로 집어삼켰다. 별것 아닌 약속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처럼 방과 후 가게로 놀러온 히컵과 얘기를 나누다가 둘 다 살게 있으니까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되면 같이 사러 가자고 말했던 거….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멈칫했다.


‘……데이트 신청이잖아.’


자각하고 나니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단 걸 깨달았다. 절망감에 어깨에서 힘이 축 빠진다. 무신경하게 군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히컵이 겉모습만 봐도 무섭기 짝이 없는 저 책으로 제 머리를 후려치더라도 그 어떤 군말도 할 수가 없다. 맞더라도 맞을 만하니 맞는 거였다. 뭐든 저렇게 함께 가자고 말해놓고 정작 당일 본인은 그 약속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뭔가가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투스에게 빌렸던 책은 돌려줬었고, 놀스가 부탁했던 일도 어제부로 모두 끝내서 오늘 내일의 주말은 온통 프리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자꾸 걸리는데 쉽게 떠오르질 않아 저를 괴롭히고 있다. 그게 꼭 나올 듯 말 듯 한 재채기로 인해 답답한 기분과 꼭 같았다.


뭘까. 뭐지? 도대체 뭐지. 뭘 잊은 걸까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떠오르질 않는데다가, 정작 그렇게 기다려왔던 주말인데 할 게 없었다. 졸리니까 잠이나 잘까 싶어 침대에 막 눕던 무렵 톡이 와서 보니 히컵이었다. 어? 순간 멈칫했다. 아주 안 좋은 기분이 등골을 타고 엄습해왔다. 아주 안 좋은 예감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 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확인을 했다가 “너 왜 안와.” 그 한마디를 보는 순간 번쩍하고 떠오른 기억에 우와악! 비명을 지르다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서둘러 휴대폰을 잡는 동시에 히컵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앞이니 당장 문 열라는 전화였다. 서둘러 방을 뛰쳐나가 문을 열었을 땐 보고 있는 책을 두 팔로 안아든 히컵이 뚱하니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웃었다간 저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책에 얻어맞아 특 S석에서 주님의 존안을 노모로 영접할 기회를 강제로 얻게 될 것만 같아 꽁꽁 얼어붙어있는데, 제가 그러던 말던 히컵은 평소와 같이 태연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제 침대 중앙을 떡하니 차지해 앉더니 그때부터 줄곧 책만 읽고 있었다. 대놓고 화를 내는 것 보다 훨씬 더 몇 배로 무서운 시위방식이다.


한참 히컵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올라가 뒤에서 끌어안는 것도 한참이었다. 허리에 팔을 둘러 등을 끌어안을 때 영 불편했는지 몸을 기대오긴 했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가끔씩 몸이 불편해 자세를 바꾸는 것 외에는 시선 한 톨도 주지 않는다. 도대체 이후 후폭풍이 어떻게 몰려올지 몰라 시간이 갈수록 심장이 쿵쿵 뛰고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종이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새 책 냄새가 여기까지 밀려와 히컵의 냄새와 섞인다. 어떻게 해야 대화라도 나눠보나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데, 그때까지 꼼짝도 않던 히컵이 움직였다. 절반이나 넘어간 두꺼운 책을 두 손으로 탁 덮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저를 봐온다.


“배고파.”

“응?”

“나 배고파.”


점심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어. 밥 줘. 저녁 굶을 거야? 그 말과 동시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뱃속에서 격렬한 요동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잭 본인도 점심을 대충 때우곤 넘겼었다. 히컵이 온 뒤로는 계속 그에게 딱 붙어있던 지라 딱히 준비해둔 것도 없다. 지금부터 하면 챙겨먹을 순 있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좀 늦다. 당장 배가고프기도 하니까. 뭐라도 시켜먹을까 하는 물음에 피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 다 잘 먹는다 하더라도 두 판은 무리일까 생각하며 던져놨던 휴대폰을 집어 드는데 그 사이에 제게서 빠져나가더니 방을 나가는 히컵이다. 출출하니 배달 올 때까지 간단하게라도 뭔가를 먹어야겠단다.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라는 말을 하며 나서는 히컵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히컵, 히컵…. 히컵.”


차라리 화라도 냈으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이대로 쭉 있는 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다행히 걸음이 빠르지 않아 금방 히컵을 붙잡아 세울 수 있었다. 앞으로 손을 뻗어 히컵의 손목을 붙잡자 가던 걸 멈추곤 저를 향해 돌아선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선명한 녹안은 현관문 앞에서 저를 올려다보던 그때와 변함없다. 멈춰 세우긴 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손목만 붙잡고 있자 뚫어져라 본다 싶던 히컵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어깨에서 힘을 빼며 입을 열었다.


“말해.”

“――미안해.”

“…사과 한번 참 빠르시네요, 잭 프로스트 씨.”


화를 낸 것도, 빈정거리는 것도 아니다. 어이없음과 한숨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여서 마음은 더 무거워질 뿐이다. 차마 말로는 다 못할 기분으로 바라보다가 마음을 다잡으며 뭐든 달게 들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고 요구하자 다시 긴 침묵이 서리처럼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은 것 같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응시하던 히컵이 한번 꾹 감았다 뜬다. 그리곤 이제껏 참았던 양 조금은 격해진 어조로 빠르게 줄줄 내뱉기 시작했다.


“바보. 멍청이. 얼간이. 변태. 아청법으로 은팔찌나 차버려.”

“…히컵.”

“일하기 시작한 뒤에 네가 네 입으로 어딜 같이 가자고 말했던 게 얼마만인 줄은 기억해?”

“미안.”

“지금 여기서 나올 대답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잘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눌러왔던 것들을 말하다 보니 평정을 유지하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졌는지 얼굴까지 와락 일그러뜨리고 있다. 미간을 좁힌 채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는 히컵의 시선이 매섭다. 화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일에 대한 서러움과 원망도 분명히 섞여 있다. 히컵의 말마따나 함께 가자고 제가 먼저 말한 건 꽤 오랜만이다. 그동안 바쁘기도 했고 히컵 역시 학생인지라 가게에서 만나는 건 늘 같더라도 함께 어딘가로 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고작 물건을 같이 사러가는 것뿐이지만 드디어 같이 돌아다닐 수 있는 일이 생겼는데 먼저 말을 꺼냈던 자신인 펑크를 내버렸다. 오랜만이라 기대했던 히컵의 마음을 실망시킨 것도, 약속을 잊고 어긴 것도 하나같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뺄 것도 없이 순순히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정말, 정말로 미안해. 다음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어?”

“응.”

“정말로?”


정말로. 되묻는 말에 제대로 반성하고 있단 걸 증명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까지 대답을 하자, 다시 한참을 보더니 깊이 숨을 몰아쉬는 히컵이다. 아무리 봐도 쉽게 감정이 가라앉을 것 같진 않다. 이만큼 화가 난 히컵은 좀처럼 보기 힘든지라 여러모로 무섭다. 마냥 고민스러워, 어떻게 어르고 달래야 그가 마음을 풀까 하던 와중이었다. 묵묵히 서 있던 히컵이 붙잡혔던 손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온다 싶더니, 자유로운 다른 손을 들어 제 멱살을 콱 틀어잡는다.


예상치 못한 행동이어서 어어어?! 비명을 지르며 속수무책으로 잡아당기는 힘에 끌려 내려가게 됐다. 그것만큼은 아닌 줄 알았는데 사실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났던 건가? 그런 건가?! 엄청나게 한심하니 후려치기라도 하려고? 아니, 두 손이 자유롭지 않으니 박치기라도 하려는 건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공황이다. 그중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에 마른 침을 삼키며 충격에 대비하려 했지만, 서로가 부딪히기 전 코앞에서 갑자기 멈추는 힘에 멈칫하게 됐다. 멀다 싶던 녹안이 바로 눈앞에까지 가까이 와 있었다. 너무 놀라 히컵을 부르려 했지만 제 말을 뚝 자르며 하는 히컵의 말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히―”

“그럼 지금부터 내일까지의 네 휴일, 몽땅 나한테 내놔.”


남자가 되서 이런 말 하긴 진짜 싫은데. 잭. 네가 늦게 오든,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던 간에, 깨트리던 상관이 없는 건 결코 아니지만, 오늘 일은 물론이고 그동안 제대로 함께 있지 못했던 시간들. 이번 휴일에 몽땅 채우고 말테야, 각오해.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지는 선언이었다. 멍하니 있으니 알겠냐며 대답을 재촉해온다. 작정하고 말했던 듯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만히 시선을 내려 보니 목까지 붉어져 있다. 눈을 연신 깜빡거리다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렴. 여부가 있겠는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똑같은 거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눈에 힘을 주고 있는 히컵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보여서. 대답하기까지 잠시 텀을 두다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려 웃은 뒤 고개를 좀 더 숙였다. 그리곤 옴팡지게도 다물어진 히컵의 입술과 약간의 거리를 둬 대답한 뒤, 그대로 서로의 입술을 겹쳤다.


“――네가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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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쓰다 말았던 썰 이어서..'~'....

앞 부분도 상황에 맞게 수정했고.

천원님께서 달달한게 보고 싶다 하셔서 풀던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궤도를 잘못잡았ㅋㅋㅋㅋㅋㅋㅋ읔ㅋㅋ

죄송스러울 따름이라 달달한걸로 따로 써야겠어요(._.)/쭈글

to까지는 너무 오버인가 싶기도하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보고싶다 하셔서 풀었던거라 으잉...ㅇ<-<........./걱정